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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화재에 맞서 배수진을 치다?


중국 한나라의 한신이 조나라 군에게 쫓기며 진을 쳤는데, 큰 강을 뒤로하고 진을 쳤습니다. 이를 본 조군은 그들의 진법을 비웃었는데요. 하지만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한신의 군대는 물러서면 강물에 빠져 죽게 되는 상황에서 모든 병사들이 적군을 맞아 죽기 살기로 싸워 승리했다는 이야기에서 배수진(背水陣)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배수진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필사의 노력으로 어떤 일에 대처해 나가는 태도를 가리킬 때 쓰이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화재에 한번 빗대어 보면 어떨까요? 



그럼 우리가 10층에 살고 있다는 가정 하에 화재라는 적군에 맞서 스스로가 배수진을 치고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말하는 배수진은 주출입구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을 말하며,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비상탈출구로 마련되어 있는 경량칸막이, 하향식 피난구, 대피공간 등을 붙박이장이나 짐을 놓은 창고로 활용해 대피로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 내에 적군인 ‘화재’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죠. 다행히 주 출입문으로 대피할 수 있는 상황이면 괜찮겠지만, 주 출입문을 화재라는 적군이 가로막아 싸워서 이겨야만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신의 군대처럼 죽기 살기로 화재와 싸워 출입문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화재가 발생하면 온도는 1,000도를 넘고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데 이에 맞서는 맨몸의 사람은 절대적으로 약자이며 대항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초기에 화재를 발견하면 소화기를 이용해 진화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대피로를 확보한 상태에서 진화를 시도해야 하며, 불이 난 공간이 연기에 차 있다면 진화를 멈추고 대피해야 합니다. 화재로 발생한 유독가스의 경우 사람이 한 번만 마셔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입구가 화재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초기진화에 실패한 경우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결국 뒤로 물러나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아파트나 공동주택에는 주 출입구 외에 비상탈출구를 확보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그 종류로는 경량칸막이, 대피공간, 하향식 피난구, 완강기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비상탈출구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 집에 어떤 종류의 비상탈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또한 알고 있다 하더라도 긴급 상황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는 있을까요?


과거 화재 사고를 기억해보면 2017년 제천의 화재사고나 2018년 밀양의 화재사고의 경우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대피로를 창고로 사용하거나 불법 증축으로 대피로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통해 비상탈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화재와 맞서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승산 없는 전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화재라는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은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비상탈출구를 확인하고, 대피 시설이나 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지 점검하고 관리한다면 우리는 화재와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할 필요 없이 화재로부터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화재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