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오천여 년 동안 쌀은 우리의 주식이었습니다. 늦은 가을, 잘 익은 벼들로 물결치는 황금 들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꼽힐 정도로 친근한 모습이죠. 그런데 우리의 주식을 생산해 온 터전인 논이 무분별한 화학비료와 농약 등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논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람에게도 환경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우리가 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논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논이 왜 중요할까요?
쌀은 이미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중요한 식량입니다. 최근에는 식량이 부족한 나라의 대안 식량으로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급격한 인구 증가율에 비해 식량 생산량이 떨어지는 아프리카의 경우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식량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식량난을 해결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곡물로 떠오른 곡물이 바로 쌀입니다. 또한 경작기간 동안 물을 담아놓는 형태인 논은 인공습지이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자연습지를 대신해서 보풀, 개구리, 우렁이 등 수많은 식물, 동물, 곤충 등 다양한 담수 생물들의 생활 공간으로 습지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어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논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용되어왔던 인공 습지입니다. 벼의 생산을 위해 만든 인공적 습지이기는 하지만 논은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 때문에 람사르협약 습지 분류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인 관개용수로도 인공 습지이지만 논과 같이 자연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람사르 습지에 등록해서 보호할 가치가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텃새와 철새의 번식을 위한 논 100개 이상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논습지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생태계적 기능 이외에도 논은 습지로서 환경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폐수 정화 기능인데요. 공장 폐수와 생활 폐수가 논에 들어오면 물 속의 질소와 인산은 이끼, 잡초 등이 흡수하기도 하지만 오폐수 대부분은 벼가 흡수합니다. 특히 벼가 흡수하고 남은 인산은 논 흙에 고정되기 때문에 그만큼 물이 깨끗해집니다. 또 벼는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할 뿐만 아니라 대기 중의 아황산가스, 질산화합물 등 유해가스도 정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년에 논에서 재배하는 벼가 흡수하는 탄산 가스의 양이 무려 1,309만 톤이며 산소 방출량은 950만 톤으로, 단위면적당으로 환산하면 산림의 정화 능력보다도 더 대기 정화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최초,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논습지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논습지로는 강화도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매화마름 군락지가 있습니다. 멸종위기 2급 식물인 매화마름은 우리나라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는데요. 수생식물로 논 주변에서만 자라는 특성 때문에 벼 농사에 사용되는 화학 비료 등으로 그 수가 급감했다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보호 운동으로 논에 화학 비료 사용을 자제 하면서 개체 수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람사르 총회를 통해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면서 국내에서도 논습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을 맛있게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자란 벼에서 난 쌀이 필요합니다. 논은 좋은 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논이 건강하게 유지되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건강해질 텐데요. 오늘부터 논 주변의 환경에 관심을 갖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쌀을 찾는다면 조금 더 건강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 입니다.